한국에서 일년에 사망하는 인구가 대략 25만 명에 이른다고 하니 하루에 7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증에서 과연 몇 명이나 자기의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받아들였을까? 대개는 죽음뿐만 아니라 늙는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나도 가는구나 하고 깨닫지는 않는지.........
죽음은 한 사람이 세상에 남긴 모든 애착을 거둬 가기도 하고 또 스스로는 고통과 근심으로부터 해방되는 새로운 출발점이기도 하다. 스님이 입적하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범종이 백 여덟 번이나 울리는데 이를 열반(涅槃)의 종소리라 한다. 이 소리에는 한 생을 마감하는 장중한 뜻이 담겨 있어 한적하기만 하던 산중은 순식간에 아쉬움과 엄숙함으로 잦아든다 병자호란 때에 항복을 거부해 청 나라에서 죽은 오달제(吳達濟, 1609-1637)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죽음을 받아들였다.
죽는다는 것은 비록 사람의 상정(常情)으로 어려운 일이나 잠깐 동안만 참으면 마침내 아무것도 모르게 되는 것이니 두려워할 것 없다.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비굴하게 사는 것이다.
여기서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은 매장하는 유일한 동물이란 사실이다. 근자에 들어서는 범사회적으로 매장보다는 화장이 증가하는 추세다 이것은 국토가 온통 묘지로 바뀌는 상황에서 이를 걱정하는 자성(自省)의 목서리가 커진 탓이고 또 정부의 매장지양 정책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화장하겠다며 서명 운동에 동참하기도 한다. 그 결과 25%에 이르던 화장 비율이 현재는 약 40%까지 치솟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은 전통적으로 시모살이를 할만큼 부모를 숭배하고 또 종교상의 이유와 부모를 두 번 죽인다는 죄스러움에 화장을 금기시 해왔다. 여기에는 부모를 명당에 모셔야 후손이 편안하고 발복한다는 풍수지리사상도 한 몫하였다. 한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60%가 풍수지리를 믿는다고 대답하였다.
그렇다면 화장에 대한 풍수의 견해는 어떤가? 풍수는 화장이 후손에게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지만 부모와 자식간의 인연만은 사라진다고 말한다. 좋은 경우는 묘지가 불행히 흉지라면 후손들 중에 기형아, 장애자 또는 무서운 질병에 걸릴 근원을 없앤 점이고 길지였다면 부모를 모심으로 인해 후손이 발복할 기회가 상실된 것이다.
화장을 하면 뼈가 고온을 거쳐 가루가 되는 과정에서 인체의 모든 조직 원소가 새로운 원소로 변한다. 그러면 부모와 자식간에 감응을 일으킬 동일한 유전인자의 파장까지 비뀌어 서로 감응하지 못한다. 결국 인연이 사라지게 되는것이다.
시대가 바끼면 장묘문화도 변한다. 현재 국토의 1%를 점하는 묘지 중에서 풍수 이론에 맞는 경우를 찾으라면 5%도 채 안될 수도 있다. 따라서 훌륭한 풍수가를 모시고 진혈에 좋은 좌향으로 모시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화장을 권하고 싶다. 이를 죄짓는 행위라 여겨 부모를 흉지에 매장한다면 이는 더 큰 잘못이다. 흉지에 묻혀 고생활 부모를 생각해 보라. 따라서 화장을 통해 고통을 덜어 주는 것도 자식의 도리라 볼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유념할 것이 있다. 부모를 추념할 여지까지 없앤다면 이는 정신적 공황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화장을 했더라도 추모할 어던 기념물(납골당. 영탑)을 남기는 것이 좋겠다. 그래야만 자식된 입장에서 허전하지도 않고 후손에겐 뿌리를 교육시킬 수 있다.
이에 앞으로의 장묘문화는 매장이나 화장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부모를 사후에 추모할 것인가에 더 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